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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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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근대사 - 중국근대시기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을 골라 화보 작성 양무운동, 공친왕 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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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근대사 - 중국근대시기 인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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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인 leewk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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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수정일 13.08.02 / 1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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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서설명
- 이름 혁흔(奕訢). 호 낙도주인(樂道主人). 도광제(道光帝)의 여섯째 아들. 함풍제(咸豊帝)의 동생. 함풍제 즉위 뒤 공친왕에 봉해졌다. 1860년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베이징[北京]에 육박하여 함풍제가 러허[熱河]로 피난하자, 연합군과 절충하여 베이징조약을 체결하고 외교전담관서인 총리각국사무아문을 설치하여 열강과의 화친을 꾀하였다.
- 본문일부/목차
- 두 황자도 부황의 소환이 대단히 중요한 관문이라는 사실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각자 사부에게 어떻게 하면 부친의 호감을 살 수 있는지 상의했다. 혁흔의 사부 탁병염은 황제가 군사에 관한 일을 물을 경우를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한편 혁저의 사부 두수전은 나랏일에 관한 것보다는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요령을 가르쳤다. 그는 혁저에게 "치국에 관한 식견이라면 황자께서는 혁흔 황자를 따르지 못합니다. 황상께서 만약 당신의 병이 깊어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고 말씀하시면 아무 말 하시지 말고 그냥 바닥에 엎드려 울기만 하십시오"라고 일러주었다.
혁저는 사부가 일러주는 대로 실수 없이 행동했고 도광제는 매우 기뻐하며 혁저가 듬직하고 효성스럽다고 생각하여 그를 계승자로 결정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혁흔의 정치적 재능은 청나라 통치자들 사이에서 이미 잘 알려져 있었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이 혁흔을 계승자로 선택하지 않은 도광제에게 짙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1850년, 혁저가 황제로 즉위하니 이가 바로 함풍제다. 함풍제는 혁흔을 공친왕에 봉했다. 혁흔은 얼마 뒤 군기처를 맡게 되었다. 제2차 아편전쟁 초기에 혁흔은 서양과 싸워야 한다는 적극적인 주전파의 입장에 있었고, 1860년 11월에는 나랍씨(서태후)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함으로써 의정왕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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