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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사] 원나라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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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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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대상]
본문일부/목차
●원나라
●역사
●정치
●경제 / 사회
●문화
●고려와의 관계

●고려와의 관계
1216년(고려 고종 3) 몽골제국에 멸망한 금(金)나라에 딸려 있던 거란(契丹)의 유민들이 고려에 침입하여 이후 3년 동안 충청 ·전라 ·경상도 등 남부지방을 제외한 북방지역을 유린하였다. 이에 몽골제국의 칭기즈칸은 ‘거란을 토멸하고 고려를 구한다’고 성명하고 몽골과 동진국(東鎭國)의 연합군을 파군하여 함경도 지방에 걸쳐 있던 거란군의 거점을 차례로 부수고 거란의 주력이 웅거한 강동성(江東城)으로 향하였다.
이에 고려에서도 군량미를 보내어 지원하고 고려군도 합세하여 강동성에 남아 있던 거란의 마지막 세력을 평정하였다. 이를 계기로 몽골은 1219년(고종 6) 개경(開京)에 사신을 보내 칭기즈칸의 조서(詔書)를 전하고 정식으로 수호(修好)를 청하였는데 이것이 몽골과의 정식 국교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몽골은 거란의 토멸이 고려에 큰 은혜를 베푼 양 해마다 상례로 과중한 공물(貢物)을 받아갔으며, 1225년에는 공물을 요구하러 고려에 왔다가 돌아가던 몽골의 사신이 국경지대에서 암살된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몽골은 이를 빙자하여 고려 정벌을 단행하였다. 1231년(고종 18) 제1차 고려침략을 시작한 이래, 몽골은 제2차(1232), 제3차(1235∼1238), 제4차(1251), 제5차(1254), 제6차(1255), 제7차(1257)의 침략군을 보내 고려를 유린하였다.
제1차 몽골의 침략을 받은 이듬해인 1232년 고려는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겨 장기 항쟁태세를 갖추어 한편으로는 싸우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조건인 국왕의 입조(入朝)와 강화도로부터의 출륙(出陸)을 들어주는 듯이 화의를 하여 철군하게 하였으나 끝내 이를 실행하지 않고 28년간 항쟁을 계속하였다. 그것은 우리가 고래로 중국 역대강대국과 외교상 부득이 사대주의를 취하여 온 것은 사실이나 국왕이 친조(親朝)한 예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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