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페이지 미만은 미리보기가
제공되지 않습니다.
-
-
사회과학계열
-
[동아시아 고대사] 동아시아 고대사『논어(論語)』에 반영된 당시 시대의 한 모습
-
동아시아_고대사_과제.hwp
-
등록인 woondoda
-
등록/수정일 10.12.11 / 10.12.11
-
문서분량 3 페이지
-
다운로드 0
-
구매평가
판매가격
1,000원
- 같은분야 연관자료
-
- 보고서설명
- 『논어(論語)』에 반영된 당시 시대의 한 모습을 정리해 놓은 것입니다.
- 본문일부/목차
- ‣ 『논어(論語)』 제 7편 술이(述而)
子曰,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부를 추구해서 얻을 만한 세상이라면, 내가 비록 채찍을 손에 잡는 일이라도 하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 (『論語』「述而」11)
공자가 살던 춘추 시대는 철기의 도입으로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부의 집중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혈연공동체가 와해되기 시작하던 때였다. 공동체 내에서의 공동생활이 이제 각 가족을 단위로 한 개별적 생활로 바뀌어 갔다. 그에 따라 만인 대 만인이 투쟁하는 약육강식이 일반화하기 시작했으며 경쟁에서 뒤진 자들은 굶주림으로 내몰렸고, 경쟁에서 승리한 자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변화는 춘추 시대 내내 전개되어 갔다.
논어 안에 보이는 `부(富)`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은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신분제가 붕괴되면서 누구든지 새로운 시대 상황에 잘 적응하고,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부를 손에 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귀(貴)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부귀(富貴)는 이제 출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노력과 기타 여러 가지 재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를 축적한 사람이 있는 이면에는 경쟁에서 낙오되어 쓰러져 간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소수의 부 축적을 위하여 다수가 희생되어야만 하는 사회, 그러한 사회가 당시 공자가 살던 사회였다. 공자가 부(富)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기본적으로 부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은 바로 이러한 사회상에서 기인하였다. 부의 집중은 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파괴하였고 나아가 공동체적인 삶도 파괴하였는데 즉, 인(仁)을 해쳤던 것이다.
- 연관검색어
-
#논어 시대상황
- 보상규정 및 환불정책
-
· 해피레포트는 다운로드 받은 파일에 문제가 있을 경우(손상된 파일/설명과 다른자료/중복자료 등) 1주일이내 환불요청 시
환불(재충전) 해드립니다. (단, 단순 변심 및 실수로 인한 환불은 되지 않습니다.)
· 파일이 열리지 않거나 브라우저 오류로 인해 다운이 되지 않으면 고객센터로 문의바랍니다.
· 다운로드 받은 파일은 참고자료로 이용하셔야 하며,자료의 활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다운로드 받은 회원님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안내
보고서 내용중의 의견 및 입장은 당사와 무관하며, 그 내용의 진위여부도 당사는 보증하지 않습니다.
보고서의 저작권 및 모든 법적 책임은 등록인에게 있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저작권 문제 발생시 원저작권자의 입장에서 해결해드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침해신고 바로가기